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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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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선행 연구 및 한계

 국내 아카펠라 찬송 실천 교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 아카펠라 찬송의 실천적 연구는 활발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은 아카펠라 찬송 실천 교회의 수가 적은 것에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예배 안에서 찬송의 역사적, 성서적 논증은 계속되었다. 따라서 다음은 아카펠라 찬송의 역사적, 성서적 연구 중심으로 선행 연구를 서술할 것이다. 환원운동 안에서 찬송은 예배의 범주 안에 속한 것으로 인식한다.[1] 따라서 찬송을 예배의 개념 밖에서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본 강좌는 찬송을 예배의 개념 안에서 살펴볼 것이다. 대표적인 예배학자 웨버는 예배의 본성에 대해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2] 예배는 사람들을 향한 서비스가 아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의 고백에 참여하는 것이다. 환원운동은 성경 안에서 예배의 본질과 실천적 요소를 찾으려는 신앙 운동이다. 실천 신학자 문병하는 “예배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3]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성도로 오직 하나님을 높이는 반면, 그릇된 예배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자신들에 종교적 갈증을 채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가는 교회를 향해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라고 호소하였다.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던(Marva J. Dawn)은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을 높이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무한한 광휘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예배는 우상 숭배일 뿐이다.”[4] 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이들을 꾸짖으셨다(막 11:15-19).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선포되어야 한다. 챔버스(Dan Chambers)는 현대 교회 예배가 엔터테인먼트에 노출되어 쇼가 되고 있다고 하였다.[5] 이것은 현대 교회가 회중들을 위해 인공적인 감동과 즐거움을 연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배는 사람의 즐거움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예배학자 화이트는 그리스도의교회 예배를 변경의 예배(The Frontier Tradition)[6]라는 범주 속에 두었는데, 변경의 예배란 개신교 예배가 미국에 적용되어 현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7] 미국 개신교 예배의 대변혁은 동부에 정착한 미국인들이 서부개척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구 대이동과 함께 발생하였고, 개척지에서 시행된 천막집회를 중심으로 개인적 측면의 회심이 강조된 실용주의적 예배의 모습을 띠었다.[8] 개인적 회심이 강조된 부흥 집회 형식의 예배에는 소위 찬송 샌드위치라는 특징이 있었는데, 이것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교훈과 위로, 권면 등의 내용을 담아 노래하는 복음송(Gospel Song)을 예배의 순서 사이, 사이에 끼어 부르는 것을 말한다.[9]이러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환원 운동가들은 회중 중심 예배를 지향하였고, 개인의 구원과 회심을 넘어 교회 공동체와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하였다. 화이트는 교회음악에서 기악의 역할과 금지도 고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0]그리스도의교회는 미국 교회들 중 기악 사용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논의를 하였으며, 그들이 부르는 아카펠라 찬송은 하나 됨(unity)과 어우러짐(harmony)의 회중 찬송의 특징적 요소를 강조한다. 

 

퍼거슨(Everett Ferguson)은 신약성경의 결론과 언어적 증거로부터 악기 음악은 신약 교회 예배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에베소서 5장 19절에 psallo는 번역하면 ‘노래하다’인데 고대 헬라어에 관한 의견 차이로 악기 사용의 논쟁을 촉발했다. 퍼거슨은 신약성경의 용어 psallo의 의미는 ‘악기를 연주하다’의 의미가 아닌 ‘목소리로 노래하다’의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주장하였다.[11] 초이트(J. E. Choate)와 우드슨(William Woodson)은 Sounding Brass And Clanging Cymbals을 공동으로 저술하였다. 이 책의 요점은 교회음악의 기악 사용이 교회가 세속화될 때, 그리고 성서의 권위를 무시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12] 저자는 환원운동을 ‘침묵의 법’을 통해 교회가 성경으로 하나 되는 신앙 운동이라고 하였다.[13] 침묵의 법은 초기 환원 운동가들에게 나타난 성경 해석의 중요한 특징적 요소이다. 프리드하드만대학(Freed - Hardeman University)’에서 출간된 Instrumental Music: Faith of Opinion는 1985년 ‘The Preachers and Church Workers’ 포럼에서 발표한 기악 찬송에 관한 토론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발제자는 제임스(Larry James), 스위트몬(Bill Swetmon) 그리고 메이(Cecil May), 라이프(David Lipe) 등이다. 제임스와 스위트몬은 예배음악에서 기악을 의견(opinion)의 측면으로 보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였다.[14] 반면 메이와 라이프는 기악 사용에 대해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사에서 침묵하고 있으므로 예배 시 기악은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5]. 이러한 의견 차이는 신약성경이 예배 시 기악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 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데, 무악기 찬송을 주장한 토론자들은 첫째, 성경에 침묵의 법을 통해 악기를 금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성도의 목소리의 고백만이 예배에 허락되었음을 주장하였다.[16] 이에 기악 찬송을 주장한 토론자들은 침묵의 법이 중요한 원칙임은 인식하고 있지만, 악기에 관해서는 예외이며 기악은 찬송을 돕는 도구로 인식된다고 주장하였다.[17]

 

에드워즈(Earl D. Edwards)의 책 배교와 복원은 그의 책 Protecting Our Blind Side의 내용 일부를 2014년 7월 한국 사경회 때 사용할 목적으로 번역한 책이다. 에드워즈는 그의 책에서 “악기를 사용한 음악은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을 통하여 인정하신 찬송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하였다.[18] 그는 특송, 찬양팀 운영에 부정적이며, 허밍과 박수와 같은 행위는 성경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19] 예배 찬송에 수행되는 실천적 부분들에 성경적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교회 공동체들에 필수적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여 인간 중심의 허무한 예배가 자행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20]

 

그리스도의교회들 운동 대사전은 10년 동안 300여 저자들이 700여 개의 주제를 선정하여 편찬한 책이다. 2015년 한국에 번역되어 소개된 이 책의 글 중 아카펠라 찬송에 대한 좋은 선행 연구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교회와 주요 인물들, 사회적 이슈들과 신학의 논증들을 집대성한 자료인데, 'Instrumental Music'에 관한 연구에서 아카펠라 찬송을 다루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18세기 이전까지 개혁교회와 환원운동교회 모두가 예배 시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18세기 이후 악기 도입이 교회에 논란이 되었고, 이 문제로 환원운동 교회들은 분열하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21] 이 책에는 아카펠라 찬송 창작자들도 소개하고 있다. 그중 브럼리(Albert E. Brumley)와 슬레이터(Will W. Slater), 또 테들리(Tillit S. Teddlie), 그리고 프레슬리(Luter G. Presley)와 같은 교회 지도자들은 찬송 창작 및 찬송 인도의 일에 참여하였다.[22]

 

코탐은 그의 책 오늘의 예배학에서 교회 전통과 새롭게 형성된 현대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야 하며, 성경에 위배 되지 않는다면 새로움도 받아드릴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23]  아카펠라 찬송의 당위성만 주장한다고 해서 찬송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에 반하는 것이 좋은 신앙의 자세가 아니듯, 새로운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 또한 좋지 못한 자세이다. 본 강좌를 통해 교회 사역자들이 그동안 자신이 이끌어 왔던 찬송의 익숙한 방법들을 점검하고 아카펠라 찬송의 다양한 활용법들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본 강좌는 교회가 아카펠라 찬송의 실천적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방법들을 개발하여 제시할 것이다. 지금까지 아카펠라 찬송에 대한 직, 간접적인 배경과 연구사를 살펴보았다. 찬송은 예배의 필수 요소이므로 더욱 세심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찬송 연구 중에서 아카펠라 찬송 연구는 아직 미진한 가운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카펠라 찬송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회들을 통해 미약하게 보급 발전되고 있다. 따라서 이 강좌는 아카펠라 찬송을 실천하는 교회들과 아직 아카펠라 찬송을 알지 못하는 교회들에 유익하도록 작성되었다. 그러므로 본 강좌는 아카펠라 찬송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돕고, 실천적 프로그램들을 개발, 연구, 보급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 강좌는 통해 한국 교회 아카펠라 찬송에 관한 실천적 적용 부분의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1] F.W. Smith, How to Praise God Today or Can We Have Instrumental Music in the Worship? (Nashville: Gospel Advocate co, 1929), 2.

[2] Robert E. Webber, Worship Leader Partnership, 양정식 역, 󰡔예배란 무엇인가󰡕 (서울: 워십리더미디어, 2015), 152.

[3] 문병하, 󰡔그리스도의교회 예배학󰡕 (서울: 그리스도대학교 출판국, 2008), 33.

[4] Marva J. Dawn, A Royal Waste of Time, 김병국 외 역, 『고귀한 시간 낭비』 (서울: 이레서원, 2004), 23-4.

[5] Dan Chambers, Showtime! Worship in the Age of Show Business (Nashville, TN: 21st Century Christian, 1997), 217-29.

[6] James F. White, Protestant Worship, 김석한 역, 『개신교 예배』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2), 293-329.

[7] Ibid., 294.

[8] 주승중, “예배의 회복과 교회교육 ; 예배의 회복 , 누구를 위한 예배인가?” 『교육교회』 266권(1999): 6.

[9] Ibid., 6.

[10] White, 『개신교 예배』, 22.

[11] Everett Ferguson, A cappella Music in the Public Worship of the Church (Fort Worth: Star Bible Publications, 1979), 5-41.

[12] J.E. Choate and William Woodson, Sounding Brass And Clanging Cymbals (Nashville: Freed Hardeman University, 1991), 232.

[13] Ibid., 238.

[14] Freed Hardeman University, ed., Instrumental Music: Faith of Opinion (Alabama: Freed Hardeman University, 1991), 37.

[15] Ibid., 17.

[16] Ibid., 49.

[17] Ibid., 29-30.

[18] Earl D. Edwards, Apostasy and Restoration, 정명섭 역, 『배교와 복원』 (서울: 그리스도의교회 출판사, 2015), 159.

[19] Ibid., 167-85.

[20] 문병하, 󰡔그리스도의교회 예배학󰡕, 22-5.

[21] Foster, ed., 『그리스도의교회들 운동 대사전』, 481-84.

[22] Ibid., 528-89.

[23] Perry C. Cotham, Ceasefire: Ending Worship Wars Through Sound Theology And Plain Common Sense, 정남수 외 역, 『오늘의 예배학』 (서울: 그리스도대학교 출판국, 2004), 19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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