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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배 찬송의 의미와 역사

2-2-1 찬송의 역사 part1

1) 구약 시대의 찬송

시편을 제외한 구약 성경에 나타난 시 형태는 “야곱의 언약(창49), 미리암의 노래(출15:21), 바다의 노래(출15:1-18), 궤의 노래(민10:35-36), 발람의 신탁(민23-24), 모세의 노래(신32)[1], 드보라의 노래(삿5), 한나의 노래(삼하2:1-10) 등을 들 수 있다.”[2] 이 밖에도 성문서와 예언서들에서 볼 수 있다. 시 형태의 기록은 구약 성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본 장에서는 먼저 시편 찬송을 살펴본 다음 구약 찬송의 핵심인 다윗의 장막에서의 찬송을 기술할 것이다. 다음으로 포로기 이후 회당 모임에서 나타난 ‘악기 배제 현상’의 원인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1) 시편 찬송

역사비평의 등장은 시편 연구에 변화를 주었다. 브릭스(C. A. Briggs)와 에발트(Heinrich Ewald), 벨하우젠(J. Wellhausen) 등이 역사비평의 대표학자이다. 궁켈은 시편 연구의 기준이 되었다. 궁켈(H. Gunkel)은 양식 비평적 시편 연구를 하였는데 문체 비판에서 벗어나 시들의 삶의 자리를 밝히려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궁켈의 제자 모빙켈은 장르별 시편 분류를 시도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제의적 삶의 해석과 관련시킨 연구였다.[3] 궁켈과 모빙켈(S. Mowinckel) 이후 학자 라드(G. van Rad), 베스터만(Claus Westermann), 크라우스(H. J. Kraus) 등이 있는데 그중 베스터만은 시편을 찬양과 탄원으로 구분하여 보았다. 

제의와 삶의 자리 논쟁 이후 교회를 위한 기능적 측면을 강조하는 연구 경향이 나타났고 밀러, 차일러, 브루그만 등이 대표적 연구자이다.[4] 브루그만은 시편 구조를 주로 연구했고 밀러는 시편 15-24편의 형성과 주제를 연구하였다. 시편은 구약의 예배와 신약의 예배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시편은 시인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인 개인이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편은 시인의 개인적 고백을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사용은 개인적인 경건의 측면보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공중예배를 위한 목적이 크다고 할 수 있다.[5] 시편은 헬라어 프살로에서 유래된 영어 용어 'Psalm'로 표기한다. 시편은 100편의 시와 작가 미상인 히브리 기자들의 찬송 50편을 더해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6] 궁켈은 시편을 찬양시, 공동체 탄원시, 개인 탄원시, 개인 감사시, 제왕시로 분류하였다.[7] 시의 용어는 히브리어 미즈모르(מִזְמוֹר)인데 이 말은 ‘음악을 연주하다’, ‘찬양하다’, ‘찬송하다’, 그리고 ‘노래하다’의 뜻을 지닌 자마르(זָמַר)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8] 시편의 구성은 총 다섯 권으로 되어 있다. 1권은 1-41편으로 하나님에 대한 초점을, 2권은 42-72편으로 고라의 시로 시작하였고 3권은 73-89편으로 앗수르 침공에 대한 주제이며 작가가 분명하지 못한 4권은 90-106편, 5권은 107-150편으로 주로 성전 파괴와 포로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9] 전체 시편 중 116개가 표제를 가지고 있으며 소위 고아 시편(Orphans)인 표제 없는 시는 34개 존재한다.[10] 시가 시편은 이스라엘 공예배, 즉 예루살렘 성전 예배와 1년에 세 번 가지는 축제 예배 때 사용되는데 공예배 시편은 7가지로 나눈다.[11]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1년에 한번 성전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성전 순례자의 노래는 주로 120~134편을 사용한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 나와 처소 안으로 들어가며 부르는 행진의 노래는 48, 84, 137, 100, 95, 24, 118편을 사용한다. 신년 찬송 81편과 추수절 67, 65편은 ‘축제 때의 찬송’이라 부른다. 이 외에도 148, 8편은 자연 송가, 99, 149편 승리의 찬송, 46편 신앙 찬송, 220, 2, 72편의 제왕시 등이 있다.[12] 다음은 지금까지의 시편 개관을 통해 찬송에 대한 3가지 특성을 서술할 것이다. 첫 번째는 ‘삶의 정황적 찬송’이며 두 번째는 공동체적 찬송 그리고 세 번째 소통적 찬송이다.

 

첫째, 찬송은 삶의 정황을 나타낸다.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에 의하면 시편은 복수의 위협 같은 이해하기 힘든 발언들로 가득한데 그것은 시인의 “생사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였다.[13] 여기서 브루그만이 시편의 문자 안에서 시인의 삶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시편 안에 나타난 시편 저자의 삶의 정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찬송으로써의 시편은 시인이 처해 있는 생사화복의 정황적 증거를 보여준다.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이와 같은 개념 안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찬송 가사 안에서 찬송자는 자신이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로 변화되었음을 간증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때를 회상하며 감사함을 고백하고 이어 종말 대망의 신앙 고백을 통해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 노래를 듣는 청중들은 힘들고 지친 시대를 거쳐 살아온 사람들로서 첫 구원 사건을 회상하며 지금도 역사하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대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찬송은 시편과 같이 가사와 선율 등을 통해 찬송자의 삶의 정황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둘째, 공동체적 찬송이란 시편에서 같이 각각의 개인 시들이 공동체 찬송시로 활용된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에 의해 창작된 찬송에 나타난 고백과 삶의 정황은 결국 공동체에 전이되어 공동체의 고백이 된다는 개념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창작된 찬송의 음악적 영역은 공동체에 의해 노래 되어 재해석과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에게서 시작된 찬송은 회중에 의해 불려지고 공동체적 의미가 부여되어 예배의 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소통적 찬송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찬송 고백의 유효성을 의미한다. 고대 사회에 사용되었던 시편은 각 시대와 상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고백의 영향력은 언제나 유효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찬송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체험하게 해준다. 나아가 소통적 찬송의 개념은 성도들이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신앙적, 음악적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한다.

(2) 다윗의 장막에서의 찬송

신약 예배에 영향을 미친 구약의 4가지 근원은 시내산 사건과 성전 그리고 회당과 절기이다.[14] 그중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세워진 성전 예배는 찬송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15] 다윗 이전에는 정기적인 찬송 행위에 대해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구약 제도는 모세로부터 시작됐지만 찬송은 다윗에 의해 기획되었다.[16]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되기 전까지 다윗은 임시 장막을 지었고(대상 15:1) 언약궤를 두었다(대상 15:2-16:1). 성전 예배는 회중이 아닌 제사장과 레위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회중은 제물을 드리는 관습에 의해 마당에서 모였다. 찬송에 관련된 일은 다윗의 장막에서 세워졌다(대상 16:4-37). 또한 노래에 익숙한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가 노래를 인도하는 자(대상 15:22)로 선정되었다. 역대상 23장 5절에서는 음악성 있는 다수의 레위인들이 찬송 사역자로 임명되었다. 역대상 29장 19절은 하나님께서 예배에 관한 모든 설계도를 다윗에게 주셨음을 보여준다. 역대상 23장과 25장은 레위의 직임에 관해 기록되었다. 3만 8천 명의 레위인 중 4천 명의 레위인이 찬송을 위해 구별되었다(대상23:5). 아삽과 헤만, 그리고 여두둔 가문에서도288명의 찬송 사역자를 구별하였다(대상 25:7). 그들의 직임은 회막 앞에서 찬송을 부르고(대상 6:32), 주야로 찬송하며(대상 9:33), 비파와 수금과 제금을 연주하며(대상15:16), 예배 찬송을 인도하는 것이다(대상 15:25-28, 26:36). 또 언약궤 앞에서 찬송을 하며(대상16:4), 감사 찬송을 부르며(대상 16:7-36), 번제 때 찬송을 부르며(대상23:31),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17]를 부르게 하였다(대상 25:1-3). 여기에서 언급된 유대교 악기의 기원은 대체로 페니키아 악기가 아닌 시리아인 라반의 영향에 의해 시리아 악기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본다.[18]

루이스는(Jack P. Lewis)는 구약 찬송에서 악기에 관해 두 가지로 정리한다.[19] 첫째, 구약 찬송에서 악기 사용은 사람이나 제도, 또는 편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적 권위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구약의 악기 사용은 단순히 예배를 돕는 것이 아닌 예배 그 자체라는 점이다. 구약이 악기에 대해 침묵하지 않기 때문에 악기 사용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구약에서 성경의 침묵을 인위적으로 첨가하는 행위는 불신의 행위였고 결과적으로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찬송의 본질은 성도들의 고백이다. 당시 선지자들은 본질이 훼손된 상태로 번영한 이스라엘에게 회심을 촉구하였다. 아모스는 굶주리고 소외된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종교적 제사에 취한 이스라엘 집권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암6:5)”. 그는 불의의 제물과 함께 울리는 북쪽 산당 음악에 대해 괴로움을 호소한다.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5:23-24)”. 구약의 찬송은 다윗에 의해 최고의 음악으로 기획되어 전해졌다. 그러나 루이스는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죄로 물든 선민 이스라엘의 번영을 상징하는 성전과 함께 기악도 영원히 침묵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20]

(3) 성전에서 회당으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전 예배는 회중에 의해서가 아닌 제사장과 레위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편 84편 2절과 10절에 궁정은 성전이 아닌 뜰(시135:2)을 말한다. 성경에 나타난 점진적 계시의 원리는 성전에 기능적 한계에 대한 이해적 개념을 제공한다. 성전은 당시 시대적 인식에 한계 속에서 의미 있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성전의 기능을 건물에서 살아 숨 쉬는 회중으로 옮겼음을 증언한다(고전3:16). 직임에 대해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의 독점적 역할을 교회가 된 회중으로 이동하였다(벧전 2:9). 이러한 배경 속에 제1 성전인 솔로몬 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이후 다시 보수되어 제2 성전인 헤롯 성전까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회당은 헬라어 쉰아고게(συναγωγή)로 마4:23, 막1:39, 눅4:15에서 유대인의 회당 장소와, 그리스도인의 집회소(약2:22)로 나타난다.[21] 그러므로 회당은 집회 모임 또는 집회 장소를 의미한다. 그러나 초기교회는 회당이 의미하는 쉰아고게 대신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초기교회가 이 용어를 선택한 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김이곤 박사는 교회가 유대교와 구별되기 위한 것에 무게를 두었다.[22] 이러한 구별은 유대교에 대한 반감이 커질수록 강하게 나타났으며, 이후 초기교회 기악 배제 현상에 영향을 주었다. 성경에서는 회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회당의 기원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그것은 바벨론 포로 기원설[23]과 헬레니즘 유입설이다.[24] 김이곤 박사는 특히 바벨론 포로기를 지지하며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한다.

 

회당 예배의 기원이란, 포로기와 더불어 유대인들이 겪게 되었던 성전예배의 상실과 깊은 고난의 체험이 만들어 낸 바, 이교예배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예배의 창출에 대한 포로민의 희망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포로의 경험과 더불어 이스라엘인들은 과거 율법에 충실하지 못한 과오를 통하여 신학적 자기반성을 하게 되고 이러한 신학적 자기반성은 함께 모여 율법을 읽고 배우는 정례적인 종교제도를 서둘러 구상하게 하였을 것이고 이 전통은 또한 포로기를 끝내고 귀환하여 새로운 성전을 세운 이후까지도 계속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회당 예배는 희생제사가 중심인 성전예배와는 달리 성서를 가르치고 기도를 드리는 일이 중심인 새로운 성격의 예배전통에 속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포로기는 분명 이스라엘 신앙과 예배전통의 대 전환점이었음이 분명하다.[25]

 

이러한 의미에서 회당은 예배의 전환점이 되어 성전과 초기교회 사이에 가교의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 회당 모임은 성전과 사제의 역할 중지에 상징적 역할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사제가 아닌 회중이 성서를 궤에서 꺼내 회당 중앙에 있는 강당 독경대에 펼쳐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26] 즉, 사제 중심의 종교적 틀이 회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성전 모임과 달리 여성이 공중예배에 남성들과 함께 자리하도록 허락됐다(행16:12). 지금까지 성전예배에서 초기교회 예배의 전환점이 된 회당 예배에 관해 살펴보았다. 회당 찬송은 성전의 기악 찬송과 대조적으로 육성 찬송의 형태를 띠었는데, 회당의 기악 배제 현상은 초기교회 찬송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영향을 주었다. 첫째. 회당 찬송의 기악 배제는 초기교회를 유대교와 이방 종교들에서 ‘구별’되도록 영향을 주었다. 퍼거슨은 초기교회 출현 당시 이방 종교와 유대교의 제의는 예배 시 악기를 연주하여 종교적 효과를 얻었다고 하였다.[27] 하지만 회당 찬송은 악기를 배제하는 것으로 다른 종교의 예배와 구별됨을 택했다. 둘째, 회당은 초기교회에 회중 중심 찬송의 개념을 제공하였다. 성전 깊숙하고 은밀한 곳은 언제나 특별한 사제들의 것이었다. 그러나 회당 찬송은 회중성과 보편성을 지향하여 초기교회 회중 찬송의 기틀이 되었다. 회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초기교회의 다락방 모임으로 전환되었는데, 비교적 짧은 기간 활용되었던 회당 찬송은 초대교회의 회중 찬송의 기틀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1] ‘바다의 노래’는 모세의 노래(출15장)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바다의 노래와 모세의 노래(신32)는 그 의미와 형태에 차이가 있고 계시록에서 언급된 모세의 노래는 바다의 노래를 말한다.

[2] 손세훈, 󰡔시편탄원신학 시인·원수·하나님󰡕, (서울: 북포유, 2010), 12.

[3] 이준환 편, 󰡔구약성서개론󰡕 (서울: 기독교서회, 2004), 435.

[4] 손세훈, 󰡔갈릴리에서 읽는 시편󰡕 (서울: 북포유, 2013),13.

[5] 박준서, “성전예배,” 󰡔연신원 목회자 하기 신학세미나 강의집󰡕 vol 9(1989): 135.

[6] 문영탁, 󰡔찬송가 해설집󰡕 (서울: 새순출판사, 1984), 13.

[7] 손세훈, 󰡔시편탄원신학 시인·원수·하나님󰡕, 15.

[8] Ibid., 13.

[9] Paul R. House, Old Testament Theology, 장세훈 역, 󰡔구약신학󰡕 (서울: 기독교 문서 선교회, 2001), 730-32.

[10] 이준환 편, 464.

[11] 김찬국, “예배와 시편,” 『연신원 목회자 하기 신학세미나 강의집』 vol. 6(1986): 233.

[12] Ibid., 233-34.

[13] Dave Bland and David Fleer, ed., Performing the Psalms, (St. Louis: Chalice Press, 2005), 10.

[14] Robert E. Webber, Worship Old and New, 김지찬 역, 『예배학』 (서울: 생명이 말씀사, 1998), 24.

[15] Lawrence Boadt, Reading the Old Testament (New York : Paulst Press, 1984), 226-69.

[16] 브루스 리프블래드, “여호와의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분 : 교회에서 음악의 역할에 대

한 생각,” 󰡔장신 국제학술대회󰡕 vol.12(2011): 334.

[17] 신령한 노래 또는 예언.

[18] John Stainer, The Music of the Bible, 성철훈 역, 『성경의 음악』 (대구: 호산나음악사, 1994), 21.

[19] Jack P. Lewis, The Instrumental Music Issue, 석태진 역, 『예배시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서울: 그리스도의교회 출판사, 1997), 20.

[20] Ibid., 22.

[21] 로고스 편, 1019.

[22] 김이곤, “회당예배,” 『연신원 목회자 하기 신학세미나 강의집』, vol. 9(1989): 142.

    김이곤 박사는 한신대학교 구약 교수를 역임했으며 구약성서의 신앙과 신학, 오경 역사서, 시편 시문학의 신학, 출애굽기 신학, 구약성서의 고난 신학 등 저술 활동을 하였다.

[23] 바벨론 포로 시기는 ‘바벨론 포로기 전’과 ‘바벨론 포로기’ 두 부분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다.

[24] 김이곤, 144-48.

[25] 김이곤, 146-47.

[26] Ibid., 157-58.

[27] Everett Ferguson, Backgrounds of Early Christianity, 『초대교회 배경사』 (서울: 은성, 1993), 1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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